대한민국 정계의 중심에서 오랜 시간 굳건히 자리를 지켜온 한덕수는 대표적인 경제관료 출신 정치인이다. 1949년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나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이후 하버드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명문 관료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70년대 행정고시에 합격한 이래 경제기획원, 상공부, 통상자원부 등에서 정책 실무를 익혔고, 통상무역실장, 통상교섭본부장,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 등 요직을 거치며 실력과 신망을 동시에 쌓았다. 특히 통상과 외교, 산업정책 분야에서의 경험은 그의 후일 국정 운영에 있어 강력한 기반이 되었으며, 경제정책 조율에 있어서도 독보적인 전문가로 자리매김했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제38대 국무총리로 임명되며 본격적인 정치 무대의 최정점에 오른 한덕수는 참여정부의 후반기를 안정적으로 이끌며 국정 운영의 균형추 역할을 수행했다. 당시 그는 관료 출신 총리로서 정무적 중립성과 행정 경험을 모두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이는 훗날 윤석열 정부에서 다시금 제48대 국무총리로 발탁되는 배경이 되었다. 2022년부터 2025년까지 총리로 재임하며 두 번째 총리직을 수행한 그는 정치적으로 큰 파고를 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했고, 특히 2024년 12월과 2025년 3월에는 두 차례에 걸쳐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으며 비상 상황에서 헌정 질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 이는 그의 행정능력과 위기관리 경험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한 사례로 기록된다.
한덕수는 당적 없는 무소속 정치인이지만, 어떤 정권에서도 중용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비정파성, 행정 전문가로서의 이력, 그리고 대외신뢰도 덕분이었다. 재정경제부 장관, 주미대사, 산업연구원장, 한국무역협회 회장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얻은 국정 전반에 대한 통찰은 그를 여야가 모두 인정하는 행정가로 만들었다. 특히 윤석열 정부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중대한 직무를 수행한 것은 그가 단순한 '관리형 총리' 이상의 존재였음을 방증하는 일이었다. 그의 정치 철학은 실용주의에 기반하며, 명확한 이념보다는 국가 이익과 안정적인 행정 집행을 최우선으로 두는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해왔다. 한덕수는 지금도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비정치적인 정치인'이라는 독특한 위치를 고수하며, 위기의 순간마다 등장하는 신뢰받는 국가 운영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칼럼] 한덕수, 국정의 교차로에서 대권의 언덕을 향하다
2025년 5월 1일 자정, 한 시대의 막이 내리고 또 다른 장이 열렸다. 대한민국 제38·48대 국무총리 한덕수가 국무총리이자 대통령 권한대행의 직을 내려놓으며 제21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화했다. 75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그것도 권위와 안정의 상징인 총리직에서 스스로 물러나 대선의 불확실성에 몸을 던졌다는 것은 단순한 정치적 행보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한덕수의 정치 인생은 ‘관리형 관료’ 그 이상이었다. 그는 위기와 혼란, 보수와 진보를 모두 관통하며 대한민국의 행정과 외교, 경제 정책 전반에 깊숙이 관여해온 ‘국가 시스템의 원로’였다.
그의 정치 여정은 1970년 제8회 행정고시 합격으로 시작됐다. 관세청 사무관으로 첫발을 내디딘 그는 이후 경제기획원과 상공부를 중심으로 행정 경력을 쌓아나갔다. 특히 산업정책과 통상 분야에서의 전문성은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라는 이력과 맞물려 ‘정책 중심의 실용 관료’라는 이미지를 굳히게 했다. 통상무역실장, 통상교섭본부장, 주 OECD 대사 등 글로벌 경제 현장에서의 풍부한 경험은 국내 관료 중에서도 드문 스펙트럼을 자랑했다. 이후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 국무조정실장,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 주미대사 등을 두루 거치며 ‘행정과 외교, 경제를 모두 아우르는 입체형 인물’로 부상했다.
그의 총리 재임은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의 분기점과 겹친다. 노무현 정부에서 마지막 총리로 임명된 그는, 개혁 드라이브의 말미를 안정감 있게 정리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후 한동안 정계를 떠났던 그는 2022년, 윤석열 정부의 초대 총리로 다시금 발탁되었다. 이는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중용될 수 있는 그의 정치적 무색성과 행정 신뢰도 때문이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하에서의 그의 역할은 단순한 국정 조정자가 아니었다. 2024년 말 발생한 비상계엄 사태와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 그는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중차대한 자리를 맡아 두 차례 국가 원수의 공백기를 메웠고, 결국 윤석열 대통령이 헌재에 의해 파면되자, 2025년 봄까지 국가의 명운을 책임지게 된다.
한덕수의 이력은 단순한 직함 나열을 넘는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 윤석열 정부까지 정권을 초월해 고위직을 두루 거치며, 행정 체계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정권 불문 신뢰의 인물’이라는 명성이 따라붙는다. 대통령 권한대행을 두 번이나 수행한 인물은 허정 이후 그가 유일하며, 두 명의 대통령(노무현, 윤석열) 모두 탄핵 소추를 경험한 정권에서 총리로 재직한 특이한 이력 또한 그의 상징성과 복잡한 정치적 위치를 설명해준다.
그러나 그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는 경력이나 경륜에만 있지 않다. 오히려 지금의 관심은 앞으로의 행보다. 그는 권한대행직 사퇴 직후, 대국민 담화를 통해 ‘진영이 아닌 국민을 위한 정치’, ‘극단의 거부, 합의의 회복’을 강하게 주장하며, 사실상 대권 도전을 선언했다. 담화문 곳곳에는 극심한 정치 양극화, 정부 불신, 국가 시스템의 붕괴 위험에 대한 깊은 우려가 배어 있었고, 이를 회복할 ‘중도의 어른 정치’가 필요하다는 강한 메시지가 담겼다. "대한민국은 왼쪽도, 오른쪽도 아닌 위로 가야 한다"는 그의 발언은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라, 지금의 정치 혼란에 대한 철학적 선언으로 읽힌다.
하지만 ‘한덕수 대망론’은 기대와 함께 여러 의문과 한계를 동반한다. 무엇보다 그는 정당 기반이 없는 무소속이다. 이는 중립적 이미지를 가능하게 했지만, 선거 국면에서는 동력이 부족할 수 있다. 또한 75세라는 고령, 관료 출신이라는 정치적 ‘색깔 부족’, 정무 감각이나 대중 친화력에서의 약점은 대권이라는 무대에서 적지 않은 제약이 된다. 실제로 그의 어법은 보그체, 영어 혼용 등으로 친숙함보다는 거리감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전통적 정치 문법에서 벗어난 ‘비정치인의 진입’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한편, 그의 과거 행보를 둘러싼 논란과 비판도 여전히 존재한다. 출신 지역에 대한 모호한 태도, 무속 관련 의혹, 실언으로 번진 독도 관련 발언 등은 검증 국면에서 집중 조명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가 일관되게 보여준 것은, 위기 속에서 물러서지 않고 체제 수호를 우선시한 공직자의 자세였다. 정권의 입맛에 따라 움직이기보다는, 국정 운영의 중립성과 헌법 질서 유지를 최우선으로 삼는 그의 태도는 동시대 정치인들 속에서 이례적으로 보일 정도다.
이제 한덕수는 대통령 후보로서, 새로운 정치 실험의 주체가 되었다. 국민은 그에게서 단순한 총리 이상의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는 ‘정치를 덜 정치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이기도 하며, 갈라진 국가를 통합할 ‘정치적 조정자’로서의 가능성에 대한 국민적 시험이다. 분열과 과잉, 무책임이 가득 찬 정치 무대에서 그는 마지막 어른 정치의 이름으로 호출되고 있다.
대한민국이 진정 위로 나아가기를 바란다면, 한덕수의 도전이 단순한 대권 경쟁을 넘어 시대정신의 실현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그 답은 곧, 국민의 선택 속에서 드러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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